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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Article] 소아암 환아 돕는 고가영 RMHC 코리아 부회장

2022.11.01

소아암 환아 돕는 고가영 RMHC 코리아 부회장

 


“이 재단에서 일하기로 한 건 도움의 대상과 그 결과가 구체적이기 때문이에요.”  

 

여성동아 문영훈 기자 - 고가영(43)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Ronald McDonald House Charities ·RMHC) 코리아 부회장의 말이다. RMHC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처음 만들어진 ‘하우스’에서 기원한다. 미식축구 선수 프레드 힐은 딸의 백혈병 투병으로 집을 떠나 병원에서 숙식하게 된다. 소아암을 앓는 다른 환자의 보호자도 자신과 같은 고충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필라델피아 어린이 병원, 지역 내 맥도날드 지점과 함께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 이후 중증 질환을 갖고 있는 아이와 그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인 ‘하우스’가 1974년 문을 연다.  

 

현재 RMHC는 전 세계 65개국에서 어린이 복지 증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2007년 설립된 RMHC 코리아는 제프리 존스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은 이후 2015년 본격적으로 국내 하우스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소위 ‘잘나가는’ 전시 기획자였던 고가영 부회장도 2017년 합류했다. 초등학교 시절 단짝이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는 그는 제프리 존스 회장을 도와 재단 내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RMHC 코리아 후원을 위한 연말 바자회 및 갈라 디너 준비로 분주한 가을을 보내고 있는 고 부회장을 10월 4일 만났다.  

 

중증 질환 앓는 아동의 부모도 환자

” 제프리 존스 회장의 제안으로 RMHC 코리아에 합류하게 됐다고요.  20대 초반부터 회장님을 알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너는 뭐 하고 싶니”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니” 물어보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픈 아이들을 도와주는 재단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죠.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제 아이가 네 살쯤 됐을 때 연락이 왔어요. “이제 네가 한 아이의 엄마도 됐고 커리어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데, 네가 하고 싶다는 그 일을 같이 해보자”는 거였죠. 남편에게 묻지도 않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웃음).  

 

그간 어떤 일을 했나요.  

국내 1호 하우스 오픈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죠. 기획부터 모금까지 모든 걸 새롭게 진행해야 했습니다.  RMHC 코리아는 2019년 9월 경남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 1호 하우스를 열었다. 지상 2층의 연면적 1521㎡(약 460평) 건물로, 환자와 환자 가족이 머무는 객실뿐 아니라 놀이방, 주방, 휴게실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개원 이래 지금까지 200여 가족이 이 공간을 거쳐 갔다. 어린 환자와 가족이 머물 공간이니만큼 설계 단계부터 세심히 살폈다. 고 부회장은 “하우스 건축가가 소아암 환자와 그 가족이 평소 여행을 가기 힘들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며 “리조트라고 생각하고 치유와 휴식을 겸할 수 있도록 공간 설계에 신경 썼다”고 말했다.  


‘하우스’는 어떤 공간인가요.  

희귀 난치성 및 소아암 환자 등 중증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전 세계에 350개 넘는 하우스가 있죠. 암 환자들 중에는 통원 치료 과정에서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아요. 소아암 센터가 따로 마련된 병원이 전국에 많지 않으니 이동 거리는 멀고요. 가족이 함께 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지치기도 해요. 병원 인근에서 지낼 공간이 필요한 아이들을 병원으로부터 추천받아 입소자를 정해요. 환자가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보다 안정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거죠.  

 

건립에 힘든 점은 없었나요.  

진짜 무(無)에서 시작해야 했어요. 여타 재단처럼 기부금을 모은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하우스를 지을 부지도 필요하고 병원·지자체와의 협의도 거쳐야 했죠. 소아암 병동 인근에 하우스를 지어야 하니까요. 기금뿐 아니라 하우스 건립에 필요한 창호, 보일러 등의 자재도 필요했어요. 모두 현물로 기부받았는데, 기부한 곳에서도 보람 있어 하시더라고요.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고요.  

아이가 아프면 부모도 함께 아파요. 그래서 소아암 환자의 엄마도 똑같은 환자라고 생각해요. 네일 케어, 아로마 테라피와 같은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죠. 아이가 큰 병을 앓으면 엄마는 본인을 생각할 시간이 없거든요. 잠깐의 시간이더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어요. 부모가 힘을 내야 아이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아픈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괴로울 것 같아요.  

소아암 환자 병동에 가보면 어린 친구들이거나 다 큰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처음엔 왜 그런지 몰랐죠. 아이들은 암이 번지는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중간 나이대가 거의 없는 거예요. 작년에 병원에서 봤던 친구가 올해는 안 보이기도 하죠. 비교적 연령대가 높은 환자들은 완치 판정 이후에 다시 재발돼 병원으로 돌아온 경우고요.  

 

희망의 순간도 있나요.  

아픈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어요. 자기로 인해 부모님이 힘들다고 자책하는 순간도 많죠. 반대로 무척 해맑기도 해요. 네 살 아이가 암에 걸렸는데 골수 이식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걸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여섯 살 형이었어요. 수술 날짜를 하루 이틀 앞두고도 형제는 무척 밝아 보였어요. 형이 너무 맑은 표정으로, 동생이 나으면 같이 놀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웃음).  

 

"서울에 '하우스' 짓는게 꿈"

RHMC 코리아는 하우스 운영 외에도 어린이병원학교, 중증 장애 아동의 치과 진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201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울림 백일장’을 개최해오고 있다. 올해 9회째를 맞는 ‘울림 백일장’은 어린이병원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입원·통원 치료 중인 아동을 대상으로 시를 공모하는 행사. 고 부회장은 고(故) 박효진 양이 쓴 ‘산길’을 소개했다. 산길을 올라가면서 어두운 그림자를 만나도, 길을 잃어버려도, 정상을 향해 계속 전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글 안에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기를 견뎌냈는지 다 담겨 있어요. 여덟 살 아이가 어떻게 이런 감정으로 글을 썼을까요. 당시 이 시가 1등을 해서 효진이는 연말에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시상식이 있기 한 달 전 하늘나라로 갔어요. 할머니가 오셔서 대신 상을 받았는데 현장이 눈물바다가 됐죠.”  

 

중증 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진행하는 이유가 있나요.  

아픈 아이가 병상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요. 지금이야 스마트폰도 많이 하지만 예전에는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 창의력이 엄청나요. 올해 9회를 맞았는데 아이들이 쓴 시가 많이 모였어요. 내년에는 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간하려고 해요.  

 

재단의 장기 목표는 뭔가요.  

서울에 하우스를 만드는 거죠. 지금도 많은 환자와 그 가족이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하우스를 찾고 있어요. 수도권에 하우스가 생기면 얼마나 더 많은 아이가 혜택을 받겠어요. 넓은 공간에 하우스를 만들어 더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이 올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재단이 열심히 뛰고는 있지만 지자체 허락도 받아야 하고, 병원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해요.  

 

쉽지 않은 일을 무보수로 하고 계신데요.  

워낙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만족도는 높아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제 손을 거쳐야 하는 일들이라 보람도 크고요.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젠가요.  

매년 이사회 때마다 감회가 새로워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떤 질환을 가진 아동이 하우스에 얼마나 머물고 갔는지를 한 명 한 명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요. 이사회 구성원들도 재단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하우스를 거쳐 간 가족들이 재단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정말 감동받아요.  누군가의 ‘엄마’라는 공감대 고 부회장은 RHMC 코리아 부회장을 맡기 전, 기업인 이미지 컨설팅과 전시 기획자로 일했다. 앤디 워홀, 피카소 전시 등을 담당했고 2017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이탈리아 미술가 피에로 포르나세티 특별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요즘도 기획을 해보자는 연락은 많이 와요(웃음). 하지만 이제는 예술 시장도 너무 커지고 전문가도 많아져서 엄두가 안 나요. 초등학생 아이에 집중하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요. 그 외 시간엔 재단 활동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아이와 엄마들에게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의류 브랜드 ‘본뉴마’도 운영하셨는데요.  

출산 후 RMHC에 합류하기 전이었어요. 엄마의 경험을 살리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엄마들이 입기 좋은 옷을 제작하는 브랜드를 만들게 됐죠.  

 

‘엄마’ 역할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엄마가 된 후 결혼 전이나 아이를 낳기 전과는 다른 시야를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엄마’만이 할 수 있는 공감을 바탕으로 아픈 아이들을 돕고 그들의 어머니를 위로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고요.  

 

아버지와는 다른가요.  

아빠도 육아에 많이 참여하고 과거와 정말 달라지긴 했지만, 내 배로 낳은 아이에 대한 감정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은 거의 한숨도 못 자죠.  

 

남편인 이석우 두나무 대표께서 일에 대한 조언도 해주나요.  

응원을 많이 해주죠. 기부를 어떻게 독려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기도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는데, 혹시 미리 세워놓은 계획이 있나요.  

개인적인 계획은 없어요(웃음). 우선 서울에 국내 2호 하우스를 오픈할 수 있도록 제프리 존스 회장님과 열심히 뛸 거고요. 재단이 하고 있는 일을 더 널리 알리고자 12월 8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열리는 연말 바자회 및 갈라 디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둔 ‘엄마’가 대표인 업체 50여 곳이 참여해서 물건을 기부해주셨어요. 아이와 엄마를 위한 다양한 제품이 준비돼 있습니다. 좋은 취지인 만큼 많은 분이 참석해주시길 바라요.  

 

출처: https://woman.donga.com/New/3/04/12/37201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