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설립 반세기… 국제중재 ‘드림팀’에 해외기업들이
먼저 찾는다
동아일보 권오혁 기자 - 국제거래와 해외투자가 빈번한 글로벌 기업들에게 국제중재는 해외기업과의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소송이 아닌 중재를 거치면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과 시간도 줄이면서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제3자에게서 합리적인 판단도 받을 수 있고, 중재의 진행 중에 조정 등의 절차를 통해 당사자들이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낼 여지도 크기 때문이다.
포스코 에너지와 미국 연료전지업체 퓨얼셀에너지(FCE) 간의 1조 원대 연료전지사업 분쟁이 대표적 사례다. 2007년부터 용융탄산염 연료전지(MCFC) 사업을 공동 진행했던 두 업체 간의 법적 분쟁은 2019년 본격화됐다. FCE가 먼저 포스코에너지를 상대로 라이선스 계약 해지 및 2억 달러(약 26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자 넉 달 뒤 포스코에너지도 FCE를 상대로 8억 달러(약 1조5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반(反)신청으로 맞섰다.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국제중재팀은 포스코에너지의 법률대리인으로 두 업체의 중재에 참여했다. 사건을 이끈 김세연 변호사(54·사법연수원 23기) 등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중재 절차가 시작된 지 1년여 되는 시점에 합의를 통한 분쟁 해결을 시도했다. 포스코에너지와 FCE 측이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합의 조건을 찾아 지난해 12월 싱가포르 국재중재센터(SIAC)의 국제조정 절차를 거쳐 합의를 이끌어냈다. 김 변호사는 “기업들이 국제중재를 할 때도 3, 4년 걸려 판정을 받기보다는 빨리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길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고객의 이해관계에 맞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중재 ‘드림팀’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1990년대 후반부터 국제중재 분야를 선도적으로 개척해왔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손꼽히는 국제중재 전문가 윤병철 변호사(60·사법연수원 16기)를 필두로 60여 명의 변호사들이 팀을 구성하고 있다. 김앤장은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국제중재팀 내에도 건설, M&A, 에너지, 조선, 보험 등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 주요 이슈별·산업군별 담당팀을 나누어 각종 국제중재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는 M&A, 합작법인(JV) 분야에서의 분쟁이 늘어나는 추세로 김앤장도 해당 분야에 대해 다양한 전문가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중재 해결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축적된 기업 자문 데이터를 통해 전문화된 산업을 이해하고 중재 과정에 접목시킨다는 점이 김앤장의 강점”이라며 “국제중재팀뿐 아니라 로펌 내 전직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등 시니어 변호사들도 국제중재 사건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의 경쟁력은 풍부한 인력 풀에 기반하고 있다. 팀장인 윤 변호사는 창립 때부터 팀을 이끌며 한국 로펌의 국제중재 수준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 이사를 지냈고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윤 변호사와 김 변호사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손꼽히는 국제중재 전문가로 평가받는 오동석 변호사(53·연수원 25기), 임병우 변호사(51·연수원 28기), 이철원 변호사(49·연수원 28기) 임수현 변호사(47·연수원 31기), 이형근 변호사(47·연수원 34기) 등 한국 변호사와 조엘 리차드슨, 매튜 크리스텐슨, 변섭준, 조은아 외국변호사 등이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해외 기업들이 먼저 찾는 ‘아시아 톱’ 김앤장
국제중재 분야에서 김앤장의 성과는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김앤장은 글로벌 법률미디어 ‘체임버스앤드파트너스’가 발행하는 법률시장 평가지 ‘체임버스 글로벌 2022’에서 국제중재 분야 글로벌 톱30에 한국 로펌 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또 윤병철 변호사가 2021년에, 김세연 변호사가 2022년에 톰슨로이터 계열 아시아지역 법률전문지인 ALB(Asian Legal Business)의 ALB 분쟁해결 아시아 변호사 톱50에 연이어 등재되는 등 개별 변호사들의 역량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여러 국가의 법과 산업 체계를 다루는 국제중재의 특성상 외국변호사, 전문가그룹과의 협업을 통한 유기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앤장의 경우 국내 최대 로펌으로 한국기업의 업무처리 방식과 조직 문화를 잘 아는 국내 변호사들과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외국변호사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팀워크가 국제중재에서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국제 분쟁에 대응하려면 단순한 언어 번역이 아닌 ‘문화 번역’이 필요하다”며 “상대방이 왜 저런 행동을 취하고 우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따져보고 다시 (제3국의) 중재판정부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할 역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번 찾은 고객이 영원한 고객으로”
글로벌 무대서 중재-자문 능력 인정 이러한 김앤장의 경쟁력은 국내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들이 김앤장을 찾는 이유기도 하다. 김앤장은 외국 터빈 제작사가 방글라데시 전력청에 납품한 터빈의 상업 운전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국내 보험사에 수리비 상당의 조립 보험금을 청구한 국제중재 사건에서 외국 터빈 제작사 법률대리인으로 참여해 최근 승소 판정을 받았다. 해외에서 이뤄진 공사와 관련된 국제 사건에서 해외 로펌이 아닌 국내 로펌이 중재 업무를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한 사례로 꼽힌다. 김앤장은 한국에 선례가 많지 않은 조립보험 관련 사례임에도 기술 전문가, 사실관계 증인 등의 신문 등을 통해 하자담보 기간 중 발생한 사고의 원인이 외국 터빈 제작사의 귀책사유에 있지 않다는 점과 보험약관에 따라 담보되는 위험임을 인정받아 최종 승소했다. 윤 변호사는 “당시 중재인들도 처음에 왜 한국 로펌이 대리인을 맡게 되었느냐면서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며 “국제중재 프로세스의 해외 수출이자 아·태 지역 내 국제중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국제중재는 국제 교류가 빈번한 스포츠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서는 김앤장의 스포츠 중재가 주목을 받았다. 당시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선에서 한국 선수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으로 실격하자 한국 선수단은 판정에 불복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대한체육회는 김앤장에 도움을 청했고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위원장 목영준)와 국제중재팀이 곧바로 중재 준비에 들어갔다. 김앤장은 6개 각도에서 촬영된 경기 영상을 철저히 분석해 ‘판정이 현저하게 자의적인 경우 판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논리로 중재 신청서 작성까지 마쳤다. 폐막식 당일까지 CAS 제소 여부를 고심했던 대한체육회와 김앤장은 오심 논란 이후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점 등을 고려해 제소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김앤장의 중재 지원은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져 수임료를 일절 받지 않았다.
기업들 국제중재 경험 쌓이며 분쟁 전 사전 자문 수요 증가
국제중재 업무가 글로벌 경기나 국제 정세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김앤장 국제중재팀도 국제분쟁 트렌드에 대한 파악과 대비에 주력하고 있다. 윤 변호사는 “올해는 세계적으로 중재사건 발생이 주춤했던 한 해”라면서 “국제중재를 여러 번 경험한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더 효율성과 전문성에 대한 고객들의 기준치도 높아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앤장에 따르면 중재 신청이 접수되는 건수는 줄었지만 중재 신청 여부를 고민하는 단계에서 조언을 구하는 요청은 늘어나는 추세다. 세부 분야로는 해외 건설 및 에너지 분야가 내년에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건설 분쟁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임병우 변호사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기업들도 모두 고통을 받으면서 규모가 작은 분쟁은 아예 법원이나 중재를 안 거치고 규모가 크고 피할 수 없는 분쟁만 중재로 가는 추세여서 더욱 사안이 복잡해지고 전문성과 경험을 요구하고 있다”며 “분쟁이 다각화되면서 기업들이 분쟁 회피를 위한 사전 자문을 구하고 여러 리스크를 다 검토해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는 데 있어 로펌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최대 강점인 전문성과 효율성을 내년에도 계속 강화시킨다는 방침이다. 윤 변호사는 “김앤장이 1973년부터 50년간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한번 찾은 고객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라며 “고객에게 가치를 부여해주는 전문성과 조직 내 풍부한 인적 자원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효율성이 중요한 이유”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