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31
상생으로 진정성 인정받으며 글로벌 시장서 존재감
한국암웨이가 이번 달로 창립 30돌을 맞는다. 성인이라면 암웨이라는 이름을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제품력에 공감하는 충성 소비자도 많고, 직접 사업에 뛰어든 이들도 꽤 된다. 누군가는 아직도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호불호를 떠나 객관적 수치만 놓고 보면 존재감은 확고하다. 암웨이는 한국에서 1조 원이 넘는 매출로 업계 부동의 1위를 수년간 유지하고 있다. 가입 회원 수는 100만 명이 넘는다. 최근 건강기능식품 열풍을 이끄는 ‘뉴트리라이트’는 이미 인기 브랜드 반열에 진입했고, 가전제품이나 주방용품 일부는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사용하면서 입소문도 탔다. 뷰티 브랜드 ‘아티스트리’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메인 스폰서로 자리매김했다. 치약 브랜드 ‘글리스터’는 각종 제품 평가에서 상위 랭킹을 차지한다.
시장 진입 당시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갖은 우여곡절과 난관을 겪어야만 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국암웨이만큼 드라마틱한 여정을 겪은 기업 사례는 드물다. 초창기 멤버들이 지금의 상황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오늘날의 한국암웨이를 있게 한 주요 역사적 지점들을 되짚어본다.
오해와 편견 속에서 뿌리를 내리다
암웨이는 1959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두 명의 청년 사업가에 의해 설립됐다. 1970년대에 이미 1억 달러의 매출 규모로 성장해 세계 시장으로 확장하던 중 1980년대 말 한국 진출을 결정한다. 이후 1989년부터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착수해 199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당시 암웨이는 기존에 없던 사업 모델을 제시했고, 시장의 관심과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아직 직접판매 방식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기대만큼이나 우려 또한 컸고, 생소한 사업 방식과 더불어 해외 자본에 의한 국내 경제 잠식에 대한 반발도 심했다. 나중에 오해를 풀었으나, 대표이사가 잠시 구속되는가 하면 각종 시민단체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소동은 1992년 방문판매법이 제정되고, 1995년 개정되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됐다. 한국암웨이는 최초의 픽업센터를 서울 양재에 오픈했다. 현재 암웨이 비즈니스&브랜드 센터의 원조 격이다. 이어 충북 음성에 생산공장을 짓고 주요 거점 지역을 확대하는 한편 1996년 소비자보호센터를 여는 등 비즈니스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장 환경, 상생의 가치로 진정성을 알리다
요란했던 1990년대 초반 시기를 거치면서 암웨이는 제품력으로 점차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며 성장 궤도에 진입했으나,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98년 외환위기 사태를 맞으며 일반 대중 정서 속 외국계 기업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이다.
위기 국면을 뒤집은 것은 진정성이라는 카드였다. 한국암웨이는 한국 경제가 신음하던 시기에 국내 경제 주체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의지를 알린 ‘원포원(One for One)’ 프로젝트를 출범시킨다. 본사에서 신제품 하나를 출시할 때마다 중소기업 제품 하나를 매칭해 암웨이의 유통망에 편입시키는 개념으로, 이후 꾸준한 협업을 통해 2015년 기준 약 280개 협력업체가 하루 평균 3만여 개의 제품을 공급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암웨이는 ‘원포원’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개발부터 생산, 마케팅, 수출 등 전 영역에 걸친 각종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중소기업과 공유한다.
한국암웨이의 이러한 상생 철학은 최근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올 4월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가 개최한 춘계학술대회에서 모범 사례로 언급됐다.
위기는 여러 곳에서 튀어나왔다. 외환위기가 잠잠해지고 어느 정도 극복 시그널이 보일 무렵인 2000년대 초반 직접판매의 형태만 빌린 대형 사기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업계 전체가 요동을 쳤다. 한국암웨이의 매출도 이 시기 급전직하했으나 이내 조정 시기를 거쳐 10년 넘는 연속 성장으로 분위기를 반등시켰다. 당시 위기 시점에서 일부 무리한 형태의 사업이라는 곁가지를 쳐내면서 탄탄한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당시 암웨이는 업계 1위로서의 책임감도 확고하게 보여줬다. 시장 질서를 빠르게 회복하고 건전한 비즈니스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공제조합 설립에 앞장선 것이다. 소비자 구제 및 보호를 주목적으로 한 조합을 2002년 출범시키며, 당시 한국암웨이 대표이사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본격화됐다. 한국암웨이는 2003년 아동센터를 설립하면서 어린이 복지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2007년에는 아동 영양 교육 프로그램 ‘건강지킴이’를 론칭한다. ‘건강지킴이’는 이후 2020년까지 총 343개 기관에서 약 16만 명의 어린이가 참여하는 규모로 발전해 2016년과 2020년 교육기부 대상을 수상했다.
해외로 뻗어 나가는 한국의 위상을 함께 보여주다
업계 리더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한편 상생 철학과 기업시민 역할로 신뢰를 쌓아가던 한국암웨이는 보다 질적으로 강화된 성장에 눈길을 두기 시작하는데,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역량을 드러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글로벌 시장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 시기 한국암웨이는 뷰티 브랜드 아티스트리를 앞세워 부산국제영화제를 공식 후원하는 한편 대표 브랜드 뉴트리라이트의 브랜드 캠페인 또한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등 마케팅 측면에서 브랜딩 활동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쳐 소비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섰다.
이와 더불어 품질경영시스템(ISO9001:2015), 환경경영시스템(ISO14001:2015) 인증을 획득하는 등 내실 경영에도 힘쓰는 한편 2015년 본사를 아셈타워로 이전해 조직을 정비하고, 2017년 여성가족부 ‘가정 친화 인증 기업’에 선정되는 등 선진 조직문화 정착에 힘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비즈니스 문법이 무너졌다. 특히 대면 영업을 근간으로 하는 암웨이 입장에서는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다. 한국암웨이는 신임 배수정 대표이사를 필두로 변화를 적극 수용하고 다양한 시도로 지속 가능한 성장 기틀 마련에 집중하는 중이다.
2019년 취임한 배 대표이사는 한국암웨이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한국암웨이 직원 최초로 본사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지내며 57개국 1300여 명의 직원과 함께 다양한 마케팅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전력이 있다. 다년간의 비즈니스 경험과 글로벌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감각을 바탕으로, 혁신에 기반한 체질 개선 작업을 강조한다.
지난해 카카오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비즈니스 플랫폼 ‘에이 클릭스(A Cliks)’를 론칭한 데 이어 모바일 및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인 ‘에이 라이브(A Live)’와 같은 디지털 혁신으로 언택트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한편 ‘장바구니 스마트 오더’를 성공적으로 도입해 구매 환경을 개선하고 사업자 초기 수익성을 강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와 더불어 산업통상자원부 규제 특례 사업의 일환으로 맞춤형 건기식 시장을 주도하고, 다양한 국내 중소기업들과의 협업을 확대하는 등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출처: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526/107131158/1